[2024.02.19] 2024 ‘검객’ 김길후, 40년 만에 고향 부산을 찾다-부산일보

 

‘검객’ 김길후, 40년 만에 고향 부산을 찾다

부산일보 | 김종열 기자 | 입력 : 2024-02-19 14:27:35  수정 : 2024-02-19 17:51:04 

 

17일 부산 해운대서 팬미팅 개최 / 국내 톱 화랑 학고재 전속 활약

붓 끝에 자아 없앤 '일획' 힘 매력 / 하반기 부산 전시 등 귀향 활동 


 예술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아를 없애는 것이라 말한다. 정확히는 자아를 ‘빼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자아가 반영되면 시대를 초월할 수 없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어야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자 하는 의도를 없애고 무의식 중에 형상을 만든다. 붓끝에 의도가 있으면 자아가 드러난다. 붓끝에 의도를 품을 시간조차 내어주지 않기 위해 단칼에 휘두른다. 일검지임(一劍之任). 그래서 혹자들은 그를 ‘검객’이라 부른다.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4x130cm


 국내 대표 화랑 학고재 전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 출신 서양화가 김길후(62) 작가의 작품이 부산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난 17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 더베이101 갤러리홀에서는 김 작가의 고향 후원모임 ‘김길후와 친구들’ 주최로 ‘설레임에서 인연으로 : 김길후의 첫 물결’ 팬미팅이 열렸다. 이날 팬미팅에는 김 작가의 작품 20여 점이 선보였고, 또한 김 작가가 스스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작품 세계 설명을 비롯해 팬들과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갤러리나 미술관, 혹은 작가 자신이 여는 전시회가 아니라 팬들이 작가와 그의 작품을 초청해 행사를 갖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김길후 작가의 ‘설레임에서 인연으로’ 팬미팅 행사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더베이101 갤러리홀에서 열렸다.

김길후 작가의 ‘설레임에서 인연으로’ 팬미팅 행사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더베이101 갤러리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길후와 친구들’을 포함해 부산 지역 작가, 갤러리 관계자, 정·관·문화계의 다양한 인사 80여 명이 참석했다. 평소 다양한 매체를 통해 김 작가에 대해 알고 있던 이는 반가운 마음에, 이번 행사 소식을 통해 새롭게 그의 이름을 접한 이는 호기심에 김 작가의 작품을 즐겼다.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이날 행사 인삿말에서 “김길후는 내면이 매우 튼튼하며 시대를 읽을 줄 알고 또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며 “이는 진정한 작가의 조건으로, 향후 역사에 남을 큰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김 작가를 소개했다.


 김 작가는 부산 출신임에도 대구 계명대(회화)를 졸업한 까닭에 많은 이들에게 대구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허나 그것도 십수 년 전까지의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지역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전국구 아니 국경 너머까지 그의 활동 영역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에 진출한 그는 2014년 북경 화이트박스아트센터에서 한국인 작가로는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화이트박스는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을 후원하는 798예술구의 대표 갤러리다. 지난 2021년부터는 학고재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김길후의 강력함은 거침없는 필선의 속도에서 나온다”며 “그의 필선을 가로막을 표현의 필법이 그를 망설이게 하거나 막아서지 못한다”고 평했다. 



The Thinking Hand, 2010, Mixed media on canvas, 227x182cm


 하지만 이같은 평 또한 3년 전 그의 화풍(畵風)일 뿐이다. 그는 늘 변화한다. 그의 삶은 늘 과거의 자기와 절교하는 삶, 껍질을 벗는 삶이었다.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그는 수많은 작품을 불태웠다. 지금껏 그려 온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전까지의 드로잉,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 등 모든 그림을 폐기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태워버린 작품 수가 1만 6000여 점에 달한다고 했다. 심지어 2013년에는 50년 넘게 가졌던 이름마저 버렸다.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반복된 자기 부정 속에서 그는 다양한 화풍을 익혔다. 실제로 그는 말한다. “나는 패러다임이 다양하다”라고.



김길후 작가의 ‘설레임에서 인연으로’ 팬미팅 행사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더베이101 갤러리홀에서 열렸다.
 

 이처럼 자기 부정의 연속된 삶을 살아온 그도, 고향의 연(緣)만큼은 부정하지 못했던 걸까. 17일 팬미팅 행사장에서 그는 부산으로의 귀향을 시사했다. 우선 조금씩 부산에서의 활동을 늘여갈 계획이다. 가장 먼저 올 하반기 부산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내달 13일부터 한 달간 서울 학고재에서 백남준·윤석남의 작품과 함께 한 이른바 ‘3인전’을 연다. 해당 전시를 하반기에 부산에 가져와 개최하기 위해 장소 마련 등 제반 준비도 함께 병행 중이다. 게다가 이날 팬미팅에서 김 작가는 부산에 개인 수장고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김 작가는 “부끄러우나마 5만 여점에 달하는 제 그림을 부산에 남겨 현재뿐 아니라 미래 시민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김길후 작가의 ‘설레임에서 인연으로’ 팬미팅 행사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더베이101 갤러리홀에서 열렸다.
 

<참고>

‘검객’ 김길후, 40년 만에 고향 부산을 찾다 - 부산일보 (busan.com)